평행선을 달리던 동부익스프레스 매각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다. 현대백화점이 단독 후보로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지만 KTB 프라이빗에쿼티(PE)와 거래에 대한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거래가 깨진 것이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TB PE는 현대백화점 측의 협상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통보했다. 이날 오전 KTB PE는 최종 회의를 갖고 이 같은 결정을 확정했다. 앞서 지난 16일 인수 우선협상자였던 현대백화점은 매매협상 중단의사를 통보한 바 있다.
매각이 결렬된 이유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양자간 가격 온도차를 끝내 줄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현대백화점은 지난 9월 동부익스프레스 매각 본입찰에 단독 참여했으나 매각 측과 가격 등 구체적인 조건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두 달 가까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업계에서는 현대백화점의 동부익스프레스 인수를 두고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초 10여 개 업체가 예비입찰에 참여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은 치열한 경쟁이 펼쳐 질 것으로 예측됐으나, 지난 9월16일 막판에 이들 대다수가 발을 빼면서 현대백화점만이 혈혈단신 본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CJ대한통운, 신세계백화점 등이 매각가(시장추정 7000억~1조)에 부담을 느껴 발을 뺐음에도 현대백화점이 본입찰에 참여한 건 “동부익스프레스가 ‘물류’회사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현대그린푸드 등 유통업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백화점그룹은 그간 현대로지스틱스에 물류 업무를 맡겨왔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현대그룹이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지분 88.8%)을 롯데그룹과 오릭스에 매각하면서 물류기업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 패션회사인 한섬과 가구회사 현대리바트를 온라인 유통시장을 활용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도 현대백화점이 물류회사가 필요한 이유로 거론됐다.
실제 본입찰 참여 당시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대로지스틱스가 롯데그룹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물류 채널을 확보해야겠다고 판단해 입찰에 참여하게 됐다”며 “기간산업인 물류사업 진출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해 본입찰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현대백화점이 유일하게 본입찰에 참여하면서 동부익스프레스 인수 작업은 쉽게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또다시 매각가를 두고 두 업체가 이견을 보이면서 본입찰 마감 한달이 넘도록 매듭을 짓지 못했고, 결국 결렬된 것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측이 제시한 동부익스프레스 인수가로는 4700억원, 매각 측은 6000억원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사려는’ 현대백화점과 ‘팔려는’ KTB PE의 가격차는 약 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4700억원을 제시한 현대백화점과 달리 KTB PE는 원매자가 현대백화점 한 곳뿐이라도 연매출 1조에 가까운 동부익스프레스의 제값은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대백화점이 가격인상 불가방침을 내세운 것은 동부익스프레스의 사업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즐비했다. 실제 동부익스프레스의 지난해 매출이 8152억원이지만 이는 계열사 간 비중이 높은 데다 현대백화점 인수 후에도 1조에 가까운 수익이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현대백화점은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두 업체 간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고, 현대백화점은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100%를 4700억원에 사들이는 대신 KTB PE가 나중에 동부익스프레스 지분 30%를 되사갈 수 있는 조건을 제시, 당시 KTB PE도 현대백화점의 ‘딜’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나 협상 타결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고, 현대백화점은 20일 동부익스프레스 인수 추진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으로 “매도인 측과 매각 가격 및 세부 조건에 대해 협의했으나 이견이 있어 인수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KTB PE는 다른 인수희망자가 나타나면 매각 협의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타이어와 한앤컴퍼니, CJ대한통운 등 인수 여력이 있는 잠재 후보군이 예비입찰과 본입찰을 거치며 인수 의사를 포기한 상태다. 로젠택배와 대우로지스틱스 등 물류업체가 매물로 시장에 나와 있는 것도 변수다.
IB업계 관계자는 “KTB PE가 유일한 본입찰 참여자인 현대백화점을 붙잡는 데 실패해 향후 투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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