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해에, 쥐(鼠)에게서 배운다

이정윤 기자 / 기사승인 : 2020-01-06 19: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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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東坡(소동파)와 李斯(이사)-

올해는 庚子(경자), 쥐띠 해이다. 쥐는 사람에게 혐오스럽다. 생김새가 얄밉고 성질이 급하며 행동이 경망한데다 좀스럽다. 더욱이 인간의 양식을 탐내고 나쁜균을 옮기는 못된 존재로 각인돼 있다.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일뿐, 자연계로서의 쥐는 존재감이 자못 크다. 생태계에 중추를 이루며,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에다, 생존 능력이 뛰어난 약삭빠른 동물이다. ‘쥐새끼 같다’라고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살 궁리를 위해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부정적 언사(言辭)지만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라는 말에 비춰볼 때 엄연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그래서 12간지의 첫 번째에 이름을 올렸는지 모른다.


21세기 앞을 분간 못하는 미세먼지같은 세상에 쥐의 살아남기 전략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東坡 蘇軾(동파 소식:1037~1101)은 쥐와 특별한 사연이 있어 글을 남겼다. 바로 ‘?鼠賦힐서부’다. ?은 ‘약다ㆍ약삭빠르다’의 뜻이며, 鼠는 쥐를 말한다. 즉 ‘약은 쥐’란 글이다. 소동파처럼 훌륭한 사람이 한갓 이런 미물에 눈길을 돌려 글을 남길 정도라면 쥐란 동물에도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원문을 풀어썼다.


소동파가 하루는 밤에 앉아있는데, 쥐가 물건을 갉아대는 소리가 났다. 침상을 치자 그쳤다가 다시 갉아댔다. 동자를 시켜 촛불을 밝혀보니 빈 풀무통에서 난 소리였다. 풀무통을 열어 촛불을 비추니 쥐가 죽어 있었다. 좀 전까지 살아서 갉아댄 쥐가 갑자기 죽은 것이 이상했다. 통을 엎으니 쥐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도망쳤다. 이때 소동파는 탄식한다. “대단하구나 쥐의 영리함이여” 쥐가 딱딱한 풀무통에 갇혀서 탈출할 수 없자 통을 갉아서 사람을 부른 것이다. 사람이 통을 열자 죽은 채 하다가 엎은 틈을 타서 이때다 싶어 도망친 것이다. 소동파는 모든 생물을 부려 군림하는 인간이 이런 하찮은 미물에 당했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지혜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인간은 사낭운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어도 벌이나 전갈에 안색이 변하는 것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어떨 때는 돌부리 하나에도 부딪혀 넘어지는 인간의 양면성을 꼬집었다. 다음은 원문이다.


蘇子夜坐 有鼠方齧 ?床而止之 旣止復作 使童子燭之 有?中空 ???? 聲在?中 曰 噫 此鼠之見閉 而不得去者也 發而視之 寂無所有 擧燭而索 中有死鼠 童子警曰 是方齧也 而遽死也 向爲何聲 豈其鬼耶 覆而出之 墮地乃走 雖有敏者 莫措其手 蘇子歎曰 異哉 是鼠之?也 閉於?中 ?堅而不可穴也 故不齧而以聲致人 不死而死 以形求脫也 吾聞有生 莫智於人 擾龍伐蛟 登龜狩麟 役萬物而君之 卒見使於一鼠 墮此蟲之計中 驚脫免於處女 烏在其爲智也 坐而假寐 私念其故 若有告余者 曰 汝惟多學而識之 望道而未見也 不一于汝而二于物 故一鼠之齧 而爲之變也 人能碎千金之璧 不能無失聲于破釜 能搏猛虎 不能無變色于峰? 此不一之患也 言出於汝 而忘之耶 余?而笑 仰而覺 使童子執筆 記余之作 /蘇東坡 ‘?鼠賦‘


이 일화는 소동파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일도 허투루 보지 않았고 거기서 배울 점을 찾아 의미를 부여했다. 그때의 ‘약은 쥐’가 대문호의 붓을 빌어 천년 만에 부활했다. 그 쥐가 이름도 거창한 2020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젊어서 고을의 아전으로 있을 때 관사의 측간에 사는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으면서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올 때마다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하루는) 이사가 곳간에 들어갔더니 쌓인 곡식을 먹는 쥐들을 보고 큰 창고에 사는 쥐들이 사람이나 개를 걱정하지 않았다. 이에 이사가 탄식하기를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비유하면 쥐와 같으니, 스스로 처하는 곳에 따라 달라질 뿐이구나” 했다.


李斯者楚上蔡人也 年少時爲郡小吏 見吏舍厠中鼠食不潔 近人犬數驚恐之 斯入倉 觀倉中鼠食積粟 居大?之下 不見人犬之憂 於是李斯乃嘆曰 人之賢不尙譬如鼠矣 在所自處耳 /『史記』 「李斯列傳」


李斯(이사: ?~BC208)는 ‘측간의 쥐’로 흥기했고 ‘곳간의 쥐’로 비극을 맞았다. 그는 같은 쥐라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처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래서 당시 실권자 呂不韋(여불위)을 찾아가 가신(家臣)이 된다. 그후 여불위의 추천으로 진시황을 만나 일급 참모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 천하 통일에 앞장섰고 나라의 기틀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최고관직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화폐 개혁과 도량형 통일, 문자통일 등 굵직한 정책이 모두 그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 그는 荀子(순자)의 제자로서 문하생 韓非子(한비자)와 함께 법가(法家)사상으로 무장하여 시대적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데 진시황 사후부터 영화가 빛을 잃어갔다. 환관 출신 趙高(조고: ?~BC207)와 모의해 2세 胡亥(호해)를 옹립하였지만 잠시 방심 하는사이 趙高에게 일격을 당해 요참형(腰斬刑)에 처해졌다. 오직 권력의 부나방만 쫓다가 당한 뜬구름같은 인생의 종말이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말았어야 했는데 권력에 취해 측간의 쥐를 망각한 것이다. 그래서 孟子(맹자)는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生於憂患 死於安樂)”라고 하지 않았든가? 위기는 안일에서 온다는 것을 그도 몰랐을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조선의 恕菴 申靖夏(서암 신정하:1680~1715)는 “李斯의 지혜는 창고 속의 쥐만도 못하다(李斯智不如倉中鼠)”라고 비판했다.


이사는 荀卿(순경ㆍ荀子순자)에게 배운 진나라 승상이다. 그의 지혜는 창고 속에 사는 쥐에게서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열전에 이르기를 “쥐가 큰 창고 속에 살면 사람과 개를 근심할 줄 모른다” 고 했다. 그런데 이사는 조고를 근심할 줄 몰랐으니 대개 쥐는 몸을 숨길 줄 알았고, 이사는 몸을 숨길 줄 몰랐기 때문이다. 평생동안 어렵게 쥐를 배웠지만 또한 제대로 잘 배우지 못했으니 슬프도다.


李斯之從學荀卿與相秦也 其智取自倉中鼠耳 然傳言鼠居大?之下 不見人犬之憂 而斯不能不見趙高之憂 盖鼠知藏身而斯不能藏身也 一生辛苦學鼠 而亦不能盡學 哀哉


신정하는 이사가 젊은 시절 두 환경의 쥐를 보고 교훈을 얻었지만, 풍족한 곳간의 쥐만 생각했지 항상 긴장하는 측간의 쥐를 망각했다고 아쉬워했다. 평생 동안 배운 쥐였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쳤을 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듯이 인간은 자신을 다스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품은 고질적 한계인가보다.


글쓴이 김동건(인문 칼럼니스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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